[영국의회&IISS 세미나 발표] 포스트김정일과 북한의 안보 과제

작성자
zsky
작성일
2012-08-01 01:36
조회
1726

<IISS 박선영 발표자료 - 5/16 영국의회>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입니다.


오늘 이처럼 뜻깊은 자리를 마련해주신 David Alton 상원의원과 Mark Fitzpatrick 국제전략연구소(International Institute for Strategic Studies, IISS) 이사님 이하 모든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I. 김정일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권력승계


2011년 12월 17일, 북한의 지도자 김정일이 갑자기 사망하자 전 세계는 그의 죽음 이후 북한권력내부가 어떻게 변화할지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했다.


단연히 지난해 한반도에서 발생한 가장 큰 사건도 김정일의 사망이었다.


37년간 현대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철권통치를 해 온 김정일의 사망은 그 자체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특히 2010년부터 튀니지에서부터 시작해 알제리, 요르단, 이집트, 예멘, 수단, 리비아 등 중동지방에 불기 시작한 자스민 바람이 카다피를 42년 권좌에서 물러나게 만들었기 때문에 김정일의 죽음은 더욱 관심을 끌었다.


당사국인 한국 입장에서 볼 때에도 김정일의 사망은 주요 사건이었다.


한반도 통일과정의 문을 열어주는 단초가 될 지, 아니면 북한 내부의 급격한 변화가 또다른 끔찍한 사건을 야기할지, 초미의 관심사였다.


동시에 김정일의 사망은 주변4강을 포함한 동북아와 국제사회의 큰 도전이기도 하다. 한국을 포함해서 러시아, 미국, 중국이 어떤 의미로든 최고 권력자를 뽑는 선거를 앞두고 있어서 더욱 관심이 증폭되었다.


따라서 모든 주변국들도 김정일 사후의 한반도를 예의 주시했다.


그것은 지금 이순간에도 마찬가지이다.


평소에도 건강이 좋지 못 했던 김정일은 그가 사망하기 1년 전인 2010년 9월,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을 후계자로 공식 지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젊은 아들에 대한 ‘2중 보호장치’를 마련했다. 선군정치 하에서 힘이 과대해진 군대를 견제하기 위해 조선로동당을 전면 재정비하면서 당의 권위를 회복시켰다.


동시에 김정은의 충실한 후견인이지만 큰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장성택을 견제하기 위해 군부에 리영호, 김정각, 김원홍, 우동측, 김영춘 등과 당에 김기남, 최룡해, 주규창, 최태복 등을 포진시켜 놓았다.


이러한 이중보호장치 하에서 김정은은 빠른 속도로 정보기관, 군대 등 권력기관을 장악하고, 김정일이 사망하자 예정대로 최고지도자의 지위에 올랐다.


겨우 27살 애송이인 김정은이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오르면서, 빠른 시간 안에 ‘당, 군, 인민(국가)의 영도자’가 된 것이다. 그리고


새 지도자 김정은은 현실적 필요에 따라 군을 지속적으로 중요하게 대하고 있지만, 아버지가 마련해준 전략적 포석대로 당을 중시하면서 궁극적으로는 당으로 하여금 군을 통제토록 하는 전략을 이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증거가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김정일 사망 후 장의위원회 명단을 보면, 그 순서가 당 정치국 상무위원, 정치국 위원, 정치국 후보위원, 당 중앙위 위원 순으로 되어 있고, 주요 군 인물이 상위 순서에 나와 있지만 그들은 군 직위가 아닌 당 직위 덕분에 그런 것이다.


일각에서 우려한 권력내부의 동요나 불협화음은 현재까지는 나오지 않고 있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 국민의 동요를 막기 위해 ‘김정일 사후 100일 동안의 애도기간에 탈북하는 사람들은 ’민족반역자‘로 보아 3대를 멸한다’는 포고령을 내리며 공포정치를 시도하기도 했고, 그같은 포고령 때문에 탈북자의 수가 단기적으로 많아지기도 했지만, 별다른 사건 사고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결국 김정은 체제가 현재로써는 안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내려오는 ‘만경대 가문의 혈통’, ‘백두혈통’의 위대함과 신성함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권력을 공고화하는 데 일단은 성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까닭은 북한체제의 독특한 폐쇄성과 국민에 대한 치밀한 통제 때문이다.


모든 국민은 매일 밤 모여서 ‘학습’이라는 명목으로 자아비판을 강요당하며 5가구가 하나의 단위가 되어 상호 감시하는 체제를 유지하고 있고, 조금만 이상하면 교화소나 노동단련소, 집결소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감옥에서 끔찍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북한도 이제는 과거와는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배급체계가 끊어지고, 공교육이 무너지면서 북한사람들은 장마당이라는 것을 통해 자본주의를 학습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중국을 오가며 보따리 장사를 하거나 가족 친지 중에 탈북자가 있는 사람들이 장마당의 큰 손으로 떠오르면서 핸드폰을 소유하게 되었다.


완벽한 통제사회였던 북한에 정보가 흘러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정치인, 탈북자, NGO 등이 북한에 풍선을 이용해 각종 정보를 흘려보내고, 라디오를 공급하면서 북한주민들은 비로소 외부세계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외부정보의 유입은 곧 사회변화를 가져온다.


바로 그 때문에 탈북자가 급증을 하게 된 것이고, 이에 놀란 북한이 정치범 수용소에서의 공개처형에 이어 일반 장소에서도 공개처형을 실시하면서 북한인권에 대한 논란이 전세계 각지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II. 거대한 감옥으로서의 북한과 중국의 변모


한 마디로 북한은 그 자체가 거대한 감옥이라고 할 수 있다.


‘3대를 멸한다’는 극악무도한 포고령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탈북자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이상과 같은 일련의 현상 때문이다.


더욱이 과거에는 배고파서 개인들이 탈북하는 ‘나홀로 탈북’이 주류였지만, 지금은 가족들이 삶의 질적 향상을 위해 탈북하는 ‘가족동반 탈북’으로 그 형태가 변모하고 있다. 북한이 당황하기 시작했고, 그 당황의 결과가 ‘3족을 멸한다’는 포고령으로 나왔다. 그러나 결과는 더 많은 탈북자를 양산하게 되었고, 탈북과정과 북송 과정, 그 사이의 비인도적 처사들이 외부세계에 바로바로 알려지면서 탈북자와 북한주민의 인권침해 현상이 국제사회에서 논란을 야기하게 된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변하자 중국도 골머리를 앓게 되었다.


처음에는 북한의 권력승계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북한을 돕고자 했지만, 국제사회의 압박이 가해지면서 중국도 변하기 시작했다.


과거처럼 일방적으로 북한 편을 들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급기야 중국은 3월의 UN 인권이사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할 때 침묵으로 일관했다. 반대토론신청도 표결요구도하지 않았다. 놀라운 일이었다.


3월 말에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에는 ‘북한은 민생이나 책임져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면박을 주었다. 이 또한 예전에는 없던 일이다.


그리곤 그동안 중국 내의 한국대사관에 억류되어 있던 탈북자들을 국군포로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돌려보냈다. 신속한 결정이었다.


이렇게 중국이 변하기 시작하자 북한은 ‘핵’카드를 다시 꺼내들었다.


III. 김정은 정권과 핵


김일성과 김정일이 지배하던 시대에도 핵은 북한의 모든 것이었다.


북한이 미국을 위협하거나 국제사회를 위협할 수 있는 카드는 핵이 유일했다.


그 핵을 위해 북한은 북한주민을 수 백만명이나 굶겨 죽였다.


그리고 김정은 체제에서도 역시 핵은 북한에게 가장 유용한 수단이다.


만일 미국이 그동안 북한과 협상하면서 ‘인권’을 함께 거론했다면 북한은 이미 오래 전에 무너졌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러시아, 일본 등 6자회담의 당사국들은 북한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북한을 정상적인 국가, 합리적 사고가 지배하는 지도자의 나라로 생각했던 것이다. 매번 속으면서도 그들은 ‘실수’라고 생각햇지 북한의 실체를 몰랐던 것이다. 살라미전술, 벼랑끝전술이라고만 생각했지 북하느이 실체에 대한 학습은 없었다.


아무튼 북한은 김정은 시대가 되자마자 세계를 향해 로켓을 쏘아올렸다.


실패했다고 해서 위협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데에는 충분히 성공했다.


그리고 다시 3차 핵실험이 거론되고 있다.


김정은이 핵을 폐기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미국은 외부적으로는 북한을 핵보유국이라고 하지 않지만, 국방부 등의 문서를 통해 내부적으로는 인정하고 있다. 플루토늄도 농축우라늄도 북한은 모두 갖고 잇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의견이다.


지난 4월에 북한이 로켓을 발사하는 데 든 돈이 1년 반 동안 북한주민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돈의 액수와 똑같다.


북한은 왜 지가 국민을 굶겨 죽이면서도 ‘핵’에 집착할까?


그것은 바로 북한의 체제와 정권을 유지해 주는 유일한 수단이 핵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개혁개방하기를 바라는 것은 한낱 꿈같은 얘기다.


개혁개방을 하려면 핵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북한은 핵을 포기할 수 없는 집단이다.


아무리 많은 국민이 굶어죽어도 북한정권은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


핵을 포기하는 순간 수령독재체제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처음부터 ‘개혁개방’을 대북정책의 기조로 삼은 이명박정부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경제위기는 민심이반을 초래하지만 통제국가, 거대한 감옥국가로 얼마든지 다스릴 수 있다. 그러나 개혁개방을 추진할 경우 수령독재체제의 근간이 무너지게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북한 당국이 가장 잘 알고 있다. 동시에 핵포기는 국민의 정치적 요구를 확장시키는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카다피의 종말처럼 김정은체제의 종말을 초래하게 되는 위험이 있기 때문에 절대로 북한은 핵을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IV. 김정은 체제의 미래


현 시점에서 권력이양의 표면적 안정성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이 권력을 장기간 유지할 수 있는가의 판단여부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보아야 한다.


하나는 ‘핵’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난이다.


문제는 둘 다 김정은 체제에는 불리한 요건들이다.


김정은 정권이 성공하려면 선군정치에서 벗어나 선경정치를 이루어야 하지만 이는 김정일의 유훈과 모순되기 때문에 할 수가 없다. 정통성을 부인해야 가능한 일이 된다. 따라서 북한에서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선군정치가 통치 이데올로기로 유지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군사적 위협에 수시로 시달리게 될 것이다.


한국이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시달리면서 한국 내부에서 불안이 야기되면 북한의 정권은 그만큼 수명이 연장될 것이다. 50년 이라는 짧은 기간에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루고 경제대국 10위권에 들어온 대한민국 국민은 군사적 긴장에 매우 취약하다.


더욱이 수령독재체제와 선군정치가 무난하게 작동하면서 김정은 체제가 단기간에 권력투쟁에 휘말리게 될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지배연합 내의 다양한 이해관계와 권력배분의 불균형으로 인한 권력투쟁 발생 가능성이 항시 존재한다. 이너서클로 이루어진 북한 권력집단의 속성상 권력투쟁의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다. 그 기간은 앞으로 2-3년 내에 가시화될 것이다.


그리고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상을 게승하는 유훈통치는 어린 김정은에게는 권력의 안정화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자 유일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김정은은 국정운영 경험이 부족하고 권력집중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정책을 제안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김정은의 입장에서는 핵 및 경제정책에서 근본적 변화를 시도함으로써 불필요한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다 김정일의 정책을 계승하는 것이 권력 유지에 유리하다고 본 것이다. 지배엘리트들 중에도 정책실패 가능성으로 인해 받게 될 위험과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근본적 정책변화를 제안하거나 추진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김정은은 김정일식의 통제와 계획경제의 근간을 유지하면서 외자유치나 특구를 통한 경제 위기 해결을 모색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김정은은 권력 유지를 위해 핵을 끝까지 고수하면서 경제 문제에서도 기존 정책을 유지할 것이다. 그러는 사이 북한주민의 인권은 이전보다 더 처참하게 유린될 것이다.


그리고 북한은 올해가 가기 전에 3차 핵실험을 실시할 것이다.


북한정권은 2006년 10월 9일 첫번째 실험을 실시했고, 유엔안보리결의안 1718호가 가동 중인데도 불구하고 2009년 5월 26일 2차 핵실험을 단행한 바 있다. 국제사회의 만류와 경고는 북한사회에는 통하지 않는다.


아니 세계가 만류할수록 북한은 신이나서 오로지 정권의 명운을 핵에 걸고 모험적인 무리수를 두어왓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2012년은 한국, 미국, 중국, 러시아 등 6자 회담 당사국들이 대부분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치룬다. 대선 총선을 앞두고 국내정치에 올인해야 하는 상황이 북한으로써는 불장난을 할 수 있는 적기가 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동북아 정세가 불안정할 수 있는 안보적 취약기라고 할 수 있다. 북한 지도부는 결코 이 틈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2차 핵실험 이후 채택된 강력한 안보리결의안 1874호 역시 북한의 추가 핵실험 욕구를 저지하지는 못할 것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북한이 핵실험을 다시 한다고 해도 추가제재를 할 수 있는 수단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북한은 이미 20년 이상 국제사회와 동떨어져서 살아오면서 나름대로 터득한 수단이 있다. 바로 국민들을 앵벌이 시키는 외화벌이 방식이다. 그들은 현금을 들고 북한을 오간다. 이렇게 비체계적인 북한식 생존 방식을 합리적이고 법적인 제재수단으로 국제사회가 제어할 방법이 이제는 마땅히 남아 있지도 않은 것이다.


결론적으로 북한의 국내정세는 김정은 체제의 안정화 정도와 정책방향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행위자 수준에서 본다면 김정은이 지배연합의 구성원을 제거할 수 있을 정도로 권력집중에 성공하기 전까지는 권력 불안정이 지속될 것이다. 또 김정은이 권력을 안정화시키더라도 핵문제로 인한 체제불안은 지속될 것이다. 문제는 서구사회가 얼마나 정확하게 북한의 내부사정을 이해하고 있으며, 북한을 압박할 수 있는 수단을 어떻게 찾아내며 한 목소리를 내느냐에 달려 있다. 북한을 압박할 수 있는 유일한 관건은 인권뿐이라는 것도 이제는 깨달아야 한다. 북한은 UN가입국이다. UN가입국으로써의 의무, 즉 UN헌장과 각종 UN인권규약을 준수하도록 끊임없이 요구하는 것, 그것이 결국은 북한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고 북한이 정상적인 국가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유일한 지름길이 될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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