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일보][충일칼럼] 물망초, 나를 잊지 마세요
물망초, 나를 잊지 마세요
박선영 의원(자유선진당)
바야흐로 사랑도 쿨(cool)한 시대다.
사랑하던 님이 떠난다고 울고불고 매달리거나 평생을 잊지 못 하고 혼자 살겠다며 산으로 바다로 떠나는 사람은 시대착오적인 사람 또는 ‘그래서 버림 받은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세상이다. 혹시라도 떠나간 님이 그리워 ‘그 집’ 앞에서 서성이거나 ‘불 꺼진 창’을 올려다보며 만나달라고 끈질기게 전화 혹은 문자를 넣었다가는 ‘스토킹’으로 처벌을 받는 세상이어서일까?
요즘 젊은이들은 만난지 100일이라고 백일잔치도 하고, 날마다 날짜를 세며 00일 기념 파티를 하고, 남의 눈 의식 안 하고 아무데서나 애정표현을 하다가도 누군가가 안녕을 고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아니 싸늘하게(cool) ‘그래, 그만두지 뭐’ 하거나, ‘내가 준 선물 다 내놔, 다른 여자(남자) 주게’한단다. 그래야 멋진 사람, 쿠울(cool)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단다.
이런 세상에 ‘나를 잊지 마세요’라니!
예쁜 장미도, 아련한 안개꽃도 아니고, 이제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물망초라니! 그런데 요즘 이 잊혀진 꽃, 식물도감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꽃, ‘나를 잊지 마세요’라는 가련한 꽃말을 가진 이 작고 연약한 물망초 꽃이 대한민국을 조용히 흔들고 있다.
지난 10월 19일, 대정부질문에서 나는 국무총리에게 물망초 배지를 건네며 말했다. 신산했던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에서 나라가 국민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 해 피눈물을 흘리며,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이 자신들을 구조해 주길 간절히 바라는 ‘역사의 조난자’들을 ‘잊지 않겠다’는 뜻으로 부디 가슴에 달아달라고. 가능하면 모든 장관들이 다 함께 달아 달라고 부탁했다.
‘역사의 조난자’들.
나라가 주권을 빼앗겨 남의 나라 식민지가 되고, 그 과정에서 이리저리 끌려가 강제 노동을 당하고, 육신을 짓밟힌 것도 억울한데 광복이 되고도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 한 분들이 어디 한 두 분인가?
생각해 보면 신산했던 우리 역사에서 역사의 조난자들은 하나 둘이 아니다.
분단 이후 60년이 넘도록 국군포로를 동토에 버려두는 나라, 그러고도 그분들을 모셔 올 생각조차 하지 않는 나라, 혹시라도 국군포로 송환 문제가 또 제기될까봐 말하는 사람의 입까지 틀어막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책가방 대신 총을 메고 전쟁터로 나갔다가 포로가 되었는데 60년이 넘도록 방치하는 나라가 이 세상 어디에 또 있겠는가? 미국은 죽은 미군의 유해를 지금 이 순간까지도 찾고 있는데....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단지 영화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깜깜한 새벽에 대통령이 자다 말고 일어나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오는 군인을 거수경례로 맞는 미국을 보며 우리 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분단국가에서 만일 또다시 전쟁이 터지면 무슨 낯으로 국민에게 전쟁에 나가라고 등을 떠밀며 동원령을 내릴 수 있단 말인가?
6.25때 가족과 친지들이 보는 앞에서 철사 줄에 꽁꽁 묶여 북으로 끌려간 전쟁 납북자가 무려 10만 명에 달한다. 그런데도 정부 수립 이후 그 어느 정권도, 그 어느 대통령도 그들을 송환받을 노력을 하기는커녕, 긴긴 세월 동안 납북자 가족들의 공직진출과 해외여행마저 금지시켰던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전쟁 중에 포로가 된 군인은 국제법상 휴전할 때 반드시 돌려보내야 한다.
전쟁 중에 민간인을 납치해 가는 것도 당연히 국제법 위반이다.
그런데도 왜 우리 정부는 국군포로와 전쟁납북자들에게 그토록 모진 삶을, 이 순간까지도 강요하는가? 대남방송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포로가 되었던 국군장교가 평생을 요덕수용소에서 지냈다는 증언이 있는데도 왜 우리 정부는 ‘아야’ 소리 한 마디 못 내고 꿀 먹은 벙어리 행세를 하는가?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거늘, 어찌하여 대한민국은 국가로서의 소명을 다 하지 않는가?
군사독재시절, 긴급조치와 계엄령이 시퍼렇게 살아 있던 시절에는 그렇다 해도, 민주화시대를 열었던 ‘서울의 봄’ 이후에도 왜 그들은 방치되어야만 하는가? 우리 정부가 그렇게 행동해왔기 때문에 북한은 6·25 후에도 우리 국민을 무시로 끌고 갔다. 해외유학지에서도, 고기잡이에 나섰던 어부들도, 심지어는 바닷가에 놀러 나온 고등학생도 무자비하게 끌고 갔다. 1969년엔 대한항공(KAL) 비행기도 납치해 갔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21명은 지금 평양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렇게 증거가 명백하게 밝혀지는 데도 한 마디 항의조차 하지 않는 나라, 아니, 누가 이의라도 제기할까봐 몸을 더 사리는 나라, 63명의 비전향 장기수를 북송하면서도 우리는 단 한 분의 국군포로도 돌려받지 않는 나라, 그런 나라는 국가로서의 자격이 없다.
물론 인정한다. 남북한이 특수관계라는 것을. 그리고 북한이 다른 나라들과는 본질적으로 달라서 다루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그러나 특수관계일수록, 다루기가 쉽지 않을수록 원칙을 견지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만일 우리가 분단 후 60여 년 동안 원칙을 지켰더라면 남북관계는 지금과는 판이하게 달라졌을 것이다. 어쩌면 북한이 정상국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역사에 가정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만, 그 모든 가정이 부질없다 하더라도 상처만이 가득한 영혼을 안고 사는 그 ‘역사의 조난자’들에게 이제라도 책임있는 공직자들이, 아니 우리 국민 모두가 ‘그들을 잊지 않겠다’는 뜻으로, 물망초 배지를 단다면, 그렇다면 그들의 상처 난 영혼에도 작은 등불 하나가 켜지지 않겠는가?(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