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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망초 관리자
작성일
2022-12-16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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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 밖의 엄마들: '나는 탈북민이자, 싱글맘입니다’
통계 밖의 엄마들: '나는 탈북민이자, 싱글맘입니다’
◇ (BBC코리아│구유나 기자) https://www.bbc.com/korean/features-63831833
▲ 여성 그림자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국내 북한이탈주민(탈북민) 중 70~80%는 여성으로, 자녀와 단둘이 사는 한부모가구 숫자도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국내 북한이탈주민(탈북민) 3만3800여 명. 이 중 70~80%는 여성이다. 하지만 통계에 잡히지 않는 부분이 있다. 바로 '엄마'들이다.
특히 한국에서 아이를 혼자 키우거나 중국이나 북한에 자녀를 두고 온 탈북 여성들은 정신적・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BBC 코리아는 2007년 한국에 온 탈북민 싱글맘 이유정(37·가명)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탈북민 10명 중 3명 '월가구소득 100만원' 미만... '결혼이민자보다 열악'
- '지난 10년간 재입북한 탈북민 31명'… 그들은 왜 다시 북으로 갔을까?
▲ 골목을 걷는 이유정씨/ 사진 설명, 이씨는 3년 전부터 아이를 혼자 키우고 있다
엄마를 살리려고 선택한 탈북
이씨가 탈북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어머니다. 이씨는 여덟 살 때 병으로 아버지를 잃었다. 세 자녀를 혼자 키우던 어머니는 고난의 행군 시기에 생활이 급격히 어려워지면서 병이 생겼다.
이씨는 어머니의 치료비를 벌기 위해 중국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신분증도 없는 불법체류자 신세로 중국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건 쉽지 않았다.
한곳에 오래 머물다보면 누군가 어김없이 신고를 했고, 중국 공안(경찰)에 잡히면 죽을 만큼 두려운 강제북송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마을에서 산으로, 산에서 다시 마을로 도망치면서 살았다.
조금이라도 안정적으로 살려면 중국 남자와 결혼하라는 게 현지 브로커의 조언이었다. 이씨는 중국 농촌의 가난한 농부를 소개받아 결혼했고, 아이도 낳았다. 당시 그의 나이 21살이었다.
21세, '엄마'가 됐다
하지만 중국에서의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않았고, 언제 북송될지 모른다는 공포는 여전했다. 그는 당시 18개월이었던 아이를 데리고 한국으로 왔지만, 막막한 한국 생활에 아이까지 돌보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1년 정도 만에 아이를 중국으로 돌려보냈다.
이씨는 중국으로 가는 지인에게 아이를 맡기면서 아이에게 "힘들겠지만 당분간 아빠랑 같이 있어라. 한국에서 자리 잡으면 너 꼭 데려올게"라고 약속했다.
"아이를 보내고 혼자서 마음이 좀 많이 힘들었어요. 그 어린 것을 (곁에서) 떼놓는 게 너무 힘들더라고요. 한 5년 동안은 마음이 너무 힘들었지만, 그걸 들여다볼 새 없이 빨리 (한국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 노력했죠."
하지만 한국에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 몇 년간은 편의점과 식당 등에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갔다. 20대 중후반이 됐을 무렵, "멀리 내다봤을 때 이런 건 내가 계속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 북한에서 찍은 이유정씨와 이씨의 어머니 사진/ 사진 출처,LEE YOOJUNG
사진 설명, 북한에서 찍은 이유정씨와 이씨의 어머니 사진
높았던 학업의 벽
이씨에겐 '학교'를 찾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탈북 청소년을 위한 학교는 많지만, 만 24세가 넘은 탈북민이 입학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수소문 끝에 미인가 대안학교인 '우리들학교'에서 검정고시 준비를 시작할 수 있었다. 1년 반 정도 공부를 했지만, 15살 이후로 연필을 손에 쥐어본 적 없다는 그에게 시험은 너무 어려웠다.
"시험을 봤을 때가 29살이었어요. (결과가 안 좋게 나오니까) 마음이 급해지더라고요. 지난 몇 년 동안 뭘 했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되게 좌절했어요. 중국에서 아이도 못 데려오고, 한국에서 자리도 못 잡고…"
결국 이씨는 검정고시를 포기하고 한국 남성과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아이도 낳았다. 이씨는 이때 시험을 포기한 것이 후회스런 선택이라고 했다.
다시 '싱글맘'이 되다
이씨는 남편이 1억원이 넘는 큰돈을 사기당하면서 결혼 생활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 상의 없이 큰 돈을 대출 받은 남편에 대한 야속함과 불어나는 이자와 원금을 갚아 나가야 한다는 막막함을 느꼈다.
"그때 충격을 받아서 정신적으로 우울증이 오고 몸이 많이 쇠약해졌어요. 처음에는 같이 갚아나가려고, 내 가정을 지키려고 노력했는데 그 타격이 너무 세더라고요."
이씨는 결국 3년 전 이혼했다. 양육비는 법원의 지급 판결 후에도 전 남편과 연락이 끊겨 받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어떻게 살아가지"라는 걱정이 들었지만 아이를 위해 일단 검정고시를 7년 만에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어린이집에 양해를 구해 오전 7시30분에 아이를 맡겨놓고 평택부터 신림까지, 우리들학교를 1년 반 동안 매일 오가며 공부했다.
마침내 2020년,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하지만 학력만으로 돈이 되는 것은 아니기에, 최근에는 낮에는 물리치료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간호조무사 시험 공부를 하고 있다.
이씨는 경제적인 어려움 외에도 그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아이를 잠깐이라도 봐줄 가족이나 친구가 없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특히 아이가 아플 때는 저녁 8시에 집에 와서 근처 야간 진료 병원에 데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저는 북한에서 힘들게 와서 가난하게 살면서 해보고 싶은 거 못 하고 이렇게 성인이 돼버렸어요. 하지만 아이만큼은 한국에서 태어났으니까 마음껏 누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저 엄마는 북한에서 왔지만 아이를 저렇게 잘 키웠구나' 이런 소리 들을 수 있게 건강하고 남부럽지 않게 키우고 싶어요."
▲ 요리하는 이유정씨
사진 설명, 매일 일을 해야 하는 이씨는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다는 점이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엄마'들
국내 탈북민 한부모 가정 통계는 따로 없지만, 전문가들은 다른 여러 통계를 미루어 볼 때 미혼모나 싱글맘의 수가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육아정책연구소는 2020년 보고서에서 ▲탈북민 75%가량이 30~50대 여성이라는 점 ▲학생 자녀가 있는 경우가 46.6%라는 점 ▲본인 포함 가구원 수가 평균 2.4명이라는 점 등을 미루어 봤을 때 탈북민 중 엄마와 자녀 둘이 사는 한부모 가정 비율이 높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씨처럼 중국이나 북한에 자녀를 두고 온 경우도 있다.
김정아 통일맘연합회 대표는 자녀와 떨어진 엄마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도 이씨처럼 2006년 탈북 후 중국에서 딸을 낳았지만, 강제북송 위협을 피해 2009년 혼자 한국에 왔다.
"국내 탈북여성들은 중국에 자녀 두고 온 것이 수치라고 생각해서 공개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숨긴다고 해서 괜찮다는 건 아니에요. 트라우마, 우울증 등으로 고통받아요. 저도 처음 한국 왔을 때 한동안 소리 내 울지 못했어요."
김 대표는 2015년 통일맘연합회를 설립해 국제사회에 중국의 탈북민 강제북송 정책 중단을 호소하고 있다.
- 탈북 여성 상당수 우울증 겪는다
- 유엔 북한인권보고관 '탈북민 강제송환은 우려스러운 일’
무엇이 개선돼야 할까
통일부는 2019년 7월 '탈북 모자 사망사건'을 계기로 탈북민 취약·위기가구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지원에 나섰지만, 인력 부족과 탈북민 특유의 폐쇄성으로 인한 조사 한계 등 여러 문제점이 지적됐다. 올해 10월에도 혼자 사는 탈북 여성이 사망한 지 오래 지난 듯한 백골 상태로 발견됐다.
탈북민도 고령화가 이뤄지고 있는 만큼 초기 정착 지원 뿐만 아니라 지자체와 연계해 취약·위기가구를 중심으로 지속적인 위기관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탈북민의 경우 보호기간 5년이 만료되면 대부분 탈북민 관리망에서 벗어나 일반 사회복지 시스템에 편입된다.
특히 아이를 혼자 기르는 탈북 여성의 경우 단발성 지원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안정적인 수입원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윤동주 우리들학교 교장은 "이 경우 아이를 양육하고 안정적인 수입원을 확보하기 위해 재사회화 교육을 충분히 받은 다음에 직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데, 대부분 나이가 많고 당장 아이 키워야 돼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돈벌기에 급급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국내 청소년 기본법상 만 24세가 넘으면 국가가 제공하는 의무교육 대상이 아니다. 대안학교도 20대 중반 정도가 마지노선인 곳이 많다.
비인가 대안학교들의 경우 나이 제한에서 비교적 자유롭지만,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씨도 검정고시를 준비할 당시 "여러 대안학교에 연락해봤지만, (27세라는) 나이가 너무 많다고 받아주질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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